시편 42편 1~6절
“환난 날에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사명자의 기도”
00:00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내리는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42편 서두에 보면,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라고 쓰여 있고, '영장으로 한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고라'라고 하는 이름이 여기 나왔는데 여러분, 민수기 16장 1절 이하에 보면 고라의 반란이 나옵니다. 이 고라는 모세의 종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촌입니다. 그는 성격이 사납고 오만 불순한 자입니다. 12정탐꾼이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온 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을 원치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 즉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는 다 죽이겠다고 하시고 그들에게 광야 40년 방황을 명령하십니다. 이 광야 방황 초반에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라는 사람과 합작을 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 혁명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는 족장 250명을 합세하게 하여 모세와 아론을 반역합니다. 이 사상은 에서 사상입니다. 에돔 사상이에요. 01:55 이 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싫고 그들의 마음에 맞지 않다고 하여 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족장 250명을 앞세우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런데 땅이 입을 쫙 벌려 이 네 사람과 그 가족들과 그들의 재산을 싹 함몰시켜 버렸습니다.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켜버렸습니다. 여러분, 이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리고 족장 250명은 소돔 고모라를 태우듯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싹 소멸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라의 자손 중 그들의 사상과 반역에 가담하지 아니한 후손이 있었습니다. 그 자손이 살아서 시편을 쓰게 된 것입니다. 42편에서 49편을 보면 고라 자손의 시가 나옵니다. 그리고 시편 제3권에 가서 85편, 87편, 88편에 보면 고라 자손의 시가 나옵니다. 이것은 고라의 반역에 가담하지 아니한 자손들이 쓴 것입니다. 그래서 (고라 자손이) 본 시편을 쓸 때에 자기가 당한 것 같이 썼지만 근본 목적과 역사를 찾아보면 다윗이 당한 일을 고라의 자손이 세심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03:48 여러분, 반란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대적은 친한 사이에서 나옵니다. 여러분, 보세요. 그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험난한 여정을 헤쳐가는 것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반란에 꼭 합세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대적하는 일에 합세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싹 그들을 제거하고 다시 이 백성들을 가나안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다윗이 양치는 목동으로서 하나님 앞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열왕 중에 다윗은 왕의 기름 부음을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는 사울 왕의 공격을 피하고 그로 인한 어려움을 다 겪고 이제 좀 평안을 누리려고 하니까 - 다윗의 셋째 아들입니다. 압살롬이라고 하는 이름도 안 좋죠. -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는 군사를 일으켜서 아버지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일은 인간의 본심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사탄이 들어가면 그만 부모, 형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05:45 압살롬이 아버지(다윗)를 죽이려고 하니까 다윗은 엉겁결에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을 갔습니다. 도망을 가는 다윗을 따라 온 고라의 자손이 이 시를 쓰게 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을 따르지만, 아무래도 이 압살롬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 고라의 자손은 "아니야, 다윗은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다윗과 함께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시를 쓰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큰 사명을 맡기려면 그가 기가 막힌 시련과 고난과 어려움과 역경을 겪게 합니다. 다윗은 양치기 소년이었을 때 자신이 나라의 왕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세우기 위해 그에게 기가 막힌 훈련과 고난과 역경을 겪게 하였습니다. 큰 사명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하나님은 신원의 종들에게 절대 평안한 꽃길을 걷게 하지 않습니다. 07:30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의 길을 걷게 하고, 때로는 억울함을 당하게도 하고, 가슴 아프게도 하고, 잠 못 자게도 하십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중에 여러분들은 단단하게 영글어집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시험이 와도 여러분에게 마지막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시면서 잘 이겨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다윗이 도망다니면서 얼마나 갈급해야 - 1절에 보면 '갈급한 사슴이 시냇물을 찾음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참으로 갈급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에서 '영혼'이 아니고 원어로 '네패쉬'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이 '생명체'입니다. '갈급한 사슴이 목이 말라 시냇물을 찾는 것 같이 내가 참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42편 서두에 이 말을 했겠습니까? 사슴은 공격 무기가 없습니다. 초식 동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급하면 도망을 잘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슴같이 뛴다'라는 표현을 하죠. 이 동물은 다리가 잘 발달돼서 잘 뛰게끔 되어 있습니다. 09:07 사슴은 이 산 저 산으로 막 다니다가 목이 마르면 반드시 물가를 찾게 돼 있습니다. 만약 사냥꾼들이 사슴 사냥을 못하면 그들은 물가에서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물 먹으러 오는 사슴이 있으면 사냥하기 위해서. 여러분, 이것이 뭔지 아십니까? 이것은 예언이에요. 마지막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의 나라를 들어 갈 자들이 때로는 이렇게 갈급하고 속상하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정말로 목이 말라 갈급해 있는 사슴과 같이 우리에게도 이런 갈급함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을 찾으려고 하면 사탄이 그것을 먼저 알고 여러분을 노립니다. 사탄이 먼저 길목에 딱 기다리고 여러분을 낚아채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는 생명의 물이 없으면 죽게 됩니다. 영생의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물 찾는 성도들을, 진리에 물을 찾는 성도들을 이제 노리고 있습니다. 10:33 여러분, 여러분의 환경과 이웃과 형제, 자식 그리고 부모와의 사이에서 사탄이 충동질할 때에 여러분들은 견디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같이 내가 너무 갈급할 때 주님이 알아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이렇게 부탁하고 간절히 소원하는 큰 사명을 가진 다윗과 같은 종들이 많이 일어날 줄 압니다. 시편 63편 1절에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다윗이 합니다. '내가 간절하게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다윗은 실수도 있었지만 다윗의 회개를 하나님이 받아주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11:52 오늘 본문에 보면은 다윗을 따라 나온 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서 방황하게 되니까 다윗이 제단을 참 그리워하였습니다. 예배드리는 그 성소를 그리워하고 있는 다윗을 오늘의 본문에 잘 반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내용 자체를 보면 "아 신원의 종들에게도 이런 일이 있게 되겠구나!" 신원의 종들에게도 이런 문제가 있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웃이나 가까운 친인척으로부터 일어나는 이 환란은 그래도 약합니다. 국가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 말씀의 종들을 공격하고 괴롭히고 위협하고 못 살게 할 때에 정말로 사슴이 시내 물을 찾는 거와 같이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앙망하고 사모하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13:25 북한 평양에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 서 있는 그 자리는 교회가 서 있던 자리였습니다. '장대현 교회'라고 여러분 많이 들어 보셨죠? 그 평양 중앙에 장대현 교회를 세워놓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드리고 그곳에 모여서 주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김정일이 그 장대현 교회를 싹 무너뜨려버리고, "너희 신이 어디에 있어?"라고 하며 김일성 김정일이 너희들의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두 부자의 신상을 만들어 놓고 지금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자리가 장대현 교회 자리예요. 신문에 보니 북한에는 지금도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죽이는지. 죽여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처참하게 죽여요. 저게 에돔 사상이에요. 에돔 사상. 제가 말씀드렸죠. 14:30 "김일성 김정일이 우리의 신인데 도대체 보이지도 않는 신을 너희가 신이라고 그렇게 섬기고 있어? 우리 신을 대적하니...." (공산당들은) 그들을 모조리 죽이면서 그중에 제일 골수분자에게 "너희 골 속에 너희 신이 어떻게 들어 있느냐?"라고 하면서 - 이 일은 신문에 난 거예요. - 그들의 머리에 공업용 드릴을 넣고 골을 뚫어 죽여버렸습니다. 이 일은 신문에 나 있는 얘기예요. 그 사상이 지금 대한민국에 확 침투했어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만약에 북한 땅에서와 같은 그런 위협이 여기에도 일어난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이 순교적인 사상으로 정리가 될까요? 오늘 본문을 한번 봐보세요. 오늘 본문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15:36 3절 4절에 보면은 다윗은 같은 민족, 동족 그리고 형제한테 그들이 예배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도와주었는데 그들은 다윗을 배신했습니다. 그들의 속 마음과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한 말이지만 마지막 신원의 날에 십자가 복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정말 어렵고 힘든 그런 날들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55편 21절에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을 하려고 가지고 있다.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그들은 16:46 뽑힌 칼로 싸우려고 하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사탄은 악합니다. 사탄은 여러분들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부모 형제라도 봐주지 않습니다. 이 사탄이 신원의 날에 엄청 발악을 할 겁니다. 그래서 시편 42편 5절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내 영혼(네페쉬)아, 이 육체야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 '불안하여 하는 고'는 고민을 하느냐 이 말입니다. 낙담하고 왜 고민을 하고 있느냐? 세상이 여러분들을 배신하고 형제가 배신하고 부부지간에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앞으로 이런 위기가 닥쳐올 때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을 하는고.' 낙망한다는 말은 낙심한다는 말입니다. 낙망 자체가 낙심과 좌절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돼 있으니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이길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라.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봐라. 그래서 42편 5절 말씀이 같은 장 11절에도 있습니다. 18:44 이 11절 말씀이 43편 5절에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군데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똑같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해서 내 속에서 이렇게 불안하여 하는고.' 여러분, 그냥 조금 근심되는 게 아니라 아주 뼛속까지 창자까지 괴로움과 고통을 느낄 때에 이 말씀이 나오게 됩니다. '여호와를 바라보라' '바라보라' 이 말은 소망 중에 시선을 그쪽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19:39 내 영혼은 어찌하여 낙망하며 내 속에서 불안해야 하는고. 좌절 상태에 있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얼굴에 도우심을 기다리면 오히려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세상은 점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해하려고 하는 세상입니다. 제가 금요일에 말씀드렸습니다. 20:32 우리나라가 못 살다가 잘 살게 되니까 젊은 청년들은 조금이라도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참 옛날에 고생했던 우리 선배들은 기가 막힌 역경과 고난을 겪었는데 이제 청년들은 웬만하면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이 사탄의 세력들이 "야, 너희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설렁설렁 일해도 오백만 원씩 주고 좀 더 잘하면 천만 원씩 준다." "정말?" "우리나라에 와라." 그래서 우리나라 젊은 청년들이 그 말에 속아 캄보디아에 천여 명이 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세계가 막 뒤집어지니까 트럼프도 "야, 이거 가만두면 안 되겠다" 하면서 일어났죠. 이제 우리나라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제가 저의 아내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고요. 소 잃어도 외양간을 고쳐야 되겠어요. 상황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옛날 사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21:51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 있는데. 캄보디아처럼 못 사는 나라에 무슨 돈이 있어서 오백만 원, 천만 원씩 막 줍니까? 그런데 제일 잘 속는 사람들이 한국사람이었다고 그래요. 젊은 세대가 지금 얼마나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는지. 여러분, 이 세상이 얼마나 갈 것 같아요? 지금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것 같아요. 막다른 골목에 다 와 있는 것 같아요. 신앙의 가정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물질을 가지고 좌지우지하면 인간의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저의 동기(목사님)들은 보조를 많이 받았습니다마는 저는 노회에서 10원 하나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조 받으면 혹시 코가 낀다고 생각하여 오히려 사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 제가 사례를 받고 있지만 사례를 받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가 오래됐죠. 그래도 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저는 이 말씀은 반드시 역사할 때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때가 온 것 같아요. 이제 때가 온 것 같아요. 23:26 그래서 6절을 보면 - 이 때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됨으로' 여러분, 기독교인들이 살아서 주님 나라 가겠다고 하면서 낙심된 적이 없었습니까? 본문 말씀에 지역이 나옵니다. 낙망이 됨으로 이런 지역을 돌아다니며 숨어 다녔습니다. 피해 다녔습니다. 어디일까요? '요단 땅과' - 요단 땅은 요단 들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살던 사람이 도망하여 요단 들로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헤르몬과 미살산이 나옵니다. 여러분, 헤르몬은 높은 산 아닙니까? 굴곡이 많고 계곡이 많고, 그리고 미살산은 헤르몬산의 줄기입니다. 24:40 오늘날 우리가 이 성경을 보면 이 지역에서 고생을 안 해도 될 사람이 요단 들판을 헤매고 헤르몬 지역을 돌아다니고 미살산 언덕을 넘나들면서 고생을 했다고 6절에 기록이 돼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뭘까요? 요단 들은 우리가 광야와 같은 생활을 하는 들판을 상징합니다. 광야입니다. 헤르몬과 미살산은 참 넘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의 산, 언덕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단 하나, '하나님은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 낙심이 되고 절망이 되지만 여호와를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아마 시적 감각이 있는 분인 것 같아요. 소년 시절부터 틈틈이 시를 썼습니다. 이 시편에는 다윗의 시가 참 많습니다. 그는 항상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들판에 헤매지 않을 자가 헤매게 되고, 헤르몬과 미살산을 넘나들지 말아야 할 사람이 이 산등성이를 넘나들었다면 그는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26:23 여러분, 우리 신원의 종은 이런 요단 들판과 같은 막연한 광야의 길을 헤맬 때도 있고, 숨이 차도록 높은 산등성이를 넘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놓치지 않고 있는 여러분들은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과 지키심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이렇게 고난의 산을 다 넘고 다윗은 왕위에 올랐을 때에 멋진 왕이 됐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훈련시키고 연단시키고 나라를 그의 손에 맡기면서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꼭 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훈련받은 그 몸둥아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연단 받은 그 육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역사가 시편 42편에 숨어 있습니다. 27:41 여러분이 믿었던 자가 여러분을 속이고, 여러분이 의지했던 자가 여러분을 이용하고 속을 뒤집어놓는 위경(위태로운 처지)을 만났을 때에라도 여러분들은 "내 육체야, 내 생명아, 내 사람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해서 불안하고 낙망하느냐 여호와를 바라보라.'라는 이 구절로 약속의 말씀을 삼으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를 바라보라. 여호와께 도움을 청하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시편 42편의 기자는 시작부터 다윗의 괴롭고 고통스러움을 사슴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라고 하였을까요? 이 내용은 우리 신원의 종들에게 위로와 축복의 말씀이 되고 승리의 말씀이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용기가 100배 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