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장 18~24절
“십자가의 도가 필요한 자와 필요 없는 자”
00:00 – 01:39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줄로 믿습니다.
구원과 영생이 되는 십자가의 도가 반드시 필요한 자가 있는가 하면 (그것이) 필요치 아니한 자가 있습니다.
빛에 속한 자는 이 말씀이, 이 진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어둠에 속한 자는 필요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피흘려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세상 사람의 지식과 학문과 지혜로써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라고 기록이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가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이 죽인 예수를 생각할 때에 거리낌이 되고
지혜있는 이방인, 헬라인들은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에) '십자가의 도'라 그랬죠?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길 도(道) 자를 썼습니다.
원어는 '길'이 아니라 '호 로고스'라는 '말씀'이라 그랬습니다.
'말씀의 길'이에요. '말씀의 도'입니다.
01:39 – 03:39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말씀이 우리를 구속해 주시는 줄로 믿고 주께서 예비한 나라를 사모하고 있는데 이 십자가의 도와 말씀이 없는 그들에게는 고향도 없고 목적지도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말씀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멸망 받을 자들은 갈 고향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약속의 말씀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이 땅 위에 살면서 풍요롭게 살고 쾌락을 누리는 것을 제일로 삼고 생을 마감합니다.
멸망받을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필요없다고 그랬습니다.
왜? (십자가의 도를 믿는 것이)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 '멸망하다'라고 하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인데, '아폴리메노이스'라고 하는 것은 '아폴뤼미'에서 발생된 현재 분사로 '멸망하고 있는 자, 멸망길로 가도록 되어 있는 자'로 돼 있습니다.
이미 멸망 길로 가도록 되어 있는 자, 이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말씀이 도저히 마음에 와닿질 않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이 마음에 뜨겁게 와닿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아니고는 우리의 길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03:39 – 04:45
이 '미련하다'라고 하는 단어의 (원어)가 '모리아'인데 이 단어는 '우둔하다, 참 어리석다.'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예정하시고 찾는 기준은 세상 기준과 다릅니다.
아마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들어오느냐에 따라 여러분들의 가는 길이 확실히 정해져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세가 있고, 구원이 있고, 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고, 살아서 영생한다는 이것을 참 미련보고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분, 이 말씀이 없으면 참 세상 살아갈 맛이 없어요.
04:45 – 06:35
우리가 어디에다가 정을 두고 어디에다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정한 자에게 깨닫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26절에 보면 '이 비밀은' - 비밀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 비밀이죠. -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흘러내려옴으로 감추어져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6절에 (이 비밀이) 만대와 만세로 늘 감춰져 온 것인데, 이제는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그랬어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의 말씀이에요. 이 말씀이 우리와 주님과 관계된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상 지혜와 지식을 하나님이 멸하겠다 그랬습니다.
또한 세상 지식을 멸하고 총명을 폐할 것이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과학자와 AI 기술자가 우주를 정복하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다스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세상 지혜와 지식만을 가지고 이 비밀을 알 수 없게 하셨습니다.
06:35 – 08:22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 학자들이나 지식자들이나 선비들이나 변사들에게 이 말씀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어째서 이 말씀이 깨달아집니까? 우리가 (이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속에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먹통이 되어서 안 들리는 귀를 가지고 교회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그저 십자가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깨달아지는 사람은) "이 말씀이 구구절절 나에게 약속된 말씀이오. 나를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구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이 은혜를 주셨고, 이 축복을 주신 것을 (그는) 못 갚아요.
갚을 길이 없습니다. 이 축복의 말씀을 우리가 원해서 주신 것도 아니고 달라고 해서 주신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예정하셨다가 (우리가) 깨닫게 해 주신 것은 정말로 주의 은혜입니다.
주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만대와 만세로 감춰놓은 비밀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세상 학자들이나 선비나 변사들, 엘리트들에게 이 말씀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의 기준은 세상 기준하고는 다릅니다.
잣대가 다릅니다.
08:22 – 10:03
(하나님은 그들을) 변변치 못한 자들이라 그랬습니다. 똑똑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지혜 있는 학자' 원어는 '현명하고 능숙한 자'라 그랬습니다.
'지혜 있는 자'의 '지혜'는 '소포스'라고 하는데, 세상에서 아무리 능숙하고 능란한 자들이라도 (그들에게서) '소피아'라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멸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말씀을 듣는 귀가 따로 있어요.
따로 있어요. 말씀 보는 눈이 따로 있어요. 제가 뉴욕에서 집회할 때
(한 권사님이 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하이웨이를 4시간 타고 달렸다면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 겁니까? 그 분은 기도와 교회 봉사만 하고 살면 주님 나라에 갈 줄 알았는데, 어떤 분이 그 권사님 보고 집회에 참석해 보라고 해서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 집회에서 말씀을 들은) 권사님의 첫마디는 "내가 바쁘고 피곤한데 하이웨이를 4시간 타고 (여기에) 왔습니다. 이 말씀이 들려지지 않으면 어떡할까 했는데 (저에게 이 말씀이 들리니) 얼마나 좋은지요. 저의 귀가 열리니 하루 종일 (목사님께서) 설교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권사님, 이제 눈이 열리셨네요."라고 말했습니다.
10:03 – 10:26
그분은 "제가 기도만 하고 봉사만 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저의) 상급이 막 더덕더덕 붙을(많을) 줄 알았는데 오늘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두 시대'가 있네요. 말씀의 역사가 있네요. 목사님, 미국 안 오실랍니까?"라고 했어요.
10:26 – 11:26
(우리의) 귀가 열려질 때는 (이 찬송의 내용과 같게 됩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아니 어떻게 말씀이 달고 오묘합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이 달고 오묘한 말씀이 생명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양식이 되고 우리에게 생수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택하는 기준은 세상적인 기준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혜있는 유명한 학자들을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총명한 자가 뭡니까? 슬기로운 자입니다. 원어는 '슬기로운 자, 영리한 자'이고 '쉰에신'이라 그랬는데, 슬기롭고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참 똑똑한 자가 많습니다.
영리한 자가 많아요.
11:26 – 12:04
그들을 (하나님이) 제거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에 '폐하리라' 하는 말은 '폐기해 버리겠다.
그들의 생각과 사상은 부합되지 않도록 막아버리겠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보십시오. 잘났다고 설치는 사람, 총명한 자, 지식자, 학식자들을 주님이 제외시켜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잣대는 세상 사람들의 잣대하고는 다릅니다.
12:04 – 13:28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잘난 사람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물도 보고 지식도 보고 학식도 보고 기술도 봅니다.
저의 손녀가 "제가 네 번이나 시험을 계속 봤는데, 세 번 합격이 됐고 (마지막 합격을 위해) 할아버지께 기도 받으러 왔어요.
할아버지 기도 좀 해주세요. 내일 화요일에 최종 시험이 있는데 이 시험의 관문만 통과하면 싱가포르에 갑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데 할아버지께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최종 시험을 쳐봐라. 하나님이 함께 하실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안 되는 것 같지만 되게 하시고, 지혜로운 것 같지만은 하나님이 그 지혜를 세워주시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지혜있는 학자도 하나님은 제거시켜 버리고, '쉰애신'이라는 총명한 자도 하나님이 폐해버리고, 선비도 하나님이 치지 않는다(폐한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선비는 율법학자와 서기관입니다.
13:28 – 14:07
율법 시대의 학자들은 얼마나 똑똑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율법에 능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십자가의 비밀을 (그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덮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덮어버리면 봐도 모르고 들어도 모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동인교회 말씀 자체가 심판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이오 사망을 삼키는 말씀인 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믿어질 때에 "아 그렇구나! 그 말씀이 이 말씀이구나!"라고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14:07 – 14:23
그 다음 말씀에 변사가 나오죠. 이 변사는 변론하는 자, 논쟁하는 자인데 변사들은 참 논쟁을 잘하고 변론을 잘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14:23 – 15:43
이들은 다 하나님께서 어리석게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전부 세상적으로는 잘난 사람들입니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에요.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인용된 말씀, 이사야 29장 14절에서 하나님은 이 백성 중에 귀한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지혜 있는 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한 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을 여기다 갖다 놓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명철을 주실 때에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싹 들어와야 됩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오게 됩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에게 이런 소리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와도 이 말씀이 안 들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설교를 들으면서 귀가 뻥 뚫어지더라고요.
이날까지 내 귀가 가려졌구나. 목사님 이번에 내 귀가 뚫어졌습니다.
15:43 – 16:20
목사님, 제가 깨달아진 말씀 한 구절 알려드릴게요.
몇 장,,,몇 절입니다. 정말 잘 깨달아졌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 말씀은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 내가 설교 한 말씀인데요. 그 말씀이 이제 깨달아지셨습니까?"
"아이고, (목사님께서) 그 때 설교를 하셨습니까? 그 때는 몰랐는데 내가 이제 깨달아진 것 같은데, 목사님께서 그 때 하셨군요."
여러분들은 이 말씀의 귀가 뚫어지기를 바랍니다.
귀가 뚫어져야 돼요. 뚫어져야 돼요. 안 뚫어지면 안 들려요.
천사의 소리를 해도 (귀가 안뚫어지면) 들려지지를 않습니다.
16:20 – 17:10
저번에 저의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그 친구의 교회 청년들이 주일날 예배드릴 때 그들은 거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우리 교회는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주일 예배시간에 핸드폰을 보는 청년이 없다고 그러니까요.
(그가) "그거 이상하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장로님 한 분은 (성도님들이) 교회에 들어올 때 "핸드폰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아니요."
(장로님이 또) "핸드폰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네."
"그럼 이 바구니에 놓고 가세요. 예배 끝나고 드리겠습니다."
그럼 (성도들 중에) 가져왔어도 "안 가져왔습니다."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나중에 보면 예배시간에 (그가) 뒤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배드릴 때 (성전에) 앉아 계신 여러분은 항상 보좌를 바라보는 그런 상태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왜 (이 곳에) 오셨습니까?
17:10 – 17:45
오늘 새벽에도 제가 왜 권사님 한 분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여기 앉았던 분들의 이름이 전부 다 기억나는데 늘 알던 그 권사님 한 분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름은 모르니 그 분의 성을 부르며 하나님께 "그 권사님 도와주시고 축복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다 끝나니 그 권사님의 이름이 떠오르더라고요.
아 죄송합니다마는 우리 자부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17:45 – 19:28
"아 주님. 우리 며느리 그냥 주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기도가 다 끝나고 나니까 우리 며느리의 이름이 탁 떠올랐습니다.
제가 이렇게 지혜가 없어요. 이렇게 지혜가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를 뚫고 들어올 때는 내가 그 말씀 앞에 꼬끄라지게(엎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주신 이 말씀, 지혜의 말씀. 우리가 보통 십자가의 도라고 하면 그냥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를 믿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십자가의 말씀'에 '호 로고스'라고 하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를 천 날 믿고 만 날 믿어도 말씀을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
말씀이 안 들려요. 안 들려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말씀이 귀에 쑥쑥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올 때는 찡그린 인상을 가지고 왔지만은 예배가 끝나면 (여러분들의 얼굴이) 백합화같이 피어서 (여러분들은) 성도들과 서로 대화하고 싶고 성도들과 만나서 안부를 묻고 싶어지게 됩니다.
움츠려진 마음이 확 열려질 때에. 그래서 성도가 서로 교통할 때 은혜로운 말로 교통해야지 시험되는 말로 교통하면 안 됩니다.
19:28 – 20:46
주님 오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여러분 제가 그러지 않습니까?
지금 6천 년이 끝나요. 성경 창세기가 기록될 때 6천 년이 끝나면 - 이것을 믿거나 말거나 - 하나님께서 7천 년 째 당신의 종들에게 그 축복을 준다고 하셨고 안식할 땅에 들어가게 한다고 그랬거든요.
안식할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얻을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랬습니다.
24절에 보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하게 생각되지만 그래도 그 중에 부르심을 입은 자,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십자가로 구속함을 받고 말씀으로 부르심을 받아서,
"이 말씀이 나에게 그렇구나!"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늘 그러죠.
일반 교회에 내리는 은혜는 죽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하는 죽는 은혜입니다.
20:46 – 21:57
우리 교회 나오다가 이사를 가서 다른 교회 간 분이 계십니다. 그 권사님이 "나는 남편 없이 못 살기 때문에 똑같은 날 같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제가 "근데 권사님, 같은 날 같이 죽는 거는 갑자기 죽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같이 떨어지거나 배를 타고 가다 뒤집어지는 사고가 나야 합니다. 아니, 권사님 그렇게 갑자기 같이 죽는 거 잘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가는(죽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 분은 "내가 죽으면 우리 영감님(남편)을 혼자 두기 싫고 우리 영감님 가는데 내가 혼자 살기 싫고 그러니까 똑같이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씀 딱 듣더니, "똑같이 살아야 되겠다." 라 그래요. 아니 똑같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던 양반(그녀)이 성경을 배우더니, "목사님, 똑같이 살아야 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똑같이 사는 법이 뭐예요? 똑같이 사는 법이 뭐예요?
(그것은) 말씀 아닙니까? 그래서 그녀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21:57 – 22:46
그 부부는 지금까지 "하나님, 우리 내외가 똑같이(같은 날에) 죽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했답니다.
여러분은 (부부가 함께) 똑같이(같은 날에) 죽고 싶어요? (부부가 함께) 같이 살고 싶어요. 그 부부가 장로님이고 권사님이예요. 그 말을 한 사람이.
그런데 이 (신원의) 말씀 딱 듣더니 "야, 똑같이(함께 같이) 사는 길이 있네요. 똑같이 사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부부끼리) 똑같이 살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새벽에도 "하나님 아버지, 나와 내 아내와 내 자식들, 우리 성도들이 흙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흙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제가 우리 성도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왜 이름이 안 떠오르는 권사가 있습니까?
22:46 – 24:05
평상시에는 달달달 외우는 권사들인데. 기도가 끝나고 '아이고, 좀 쉬자.'라고 하니 "아, 그 권사님의 이름이 그 이름이었구나!"하고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심지어 우리 자부 이름도 생각 안 나더라니까요. 기도하려니까. 그래서 "하나님, 우리 며느리 복 주시고 정말로 영생하는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목사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억 안 나다가 나다가, 나다가 안 나다가할 수 있고 심지어 이름을 잊어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이름을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창세 전에, 우주 삼라만상을 만들기 전에, 저 종은 언제 어느 시에 태어나서 어느 말씀으로 예수를 믿다가 끝날 예정으로 돼 있고요.
저 사람은 시련과 연단과 고난 속에 이 팔도강산을 누비면서 유람하더라도 이 말씀으로 영생하기로 예정된 자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앉아서 (다 같이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기로 예정된 자는 이 말씀을 확 잡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에는 두 길밖에 없어요. 두 길밖에 없어요.
한가지 길은 죽어서 가는 길인데, 그것은 1차 구원(영혼 구원)입니다.
24:05 – 25:39
살아서 주님 맞이하는 길은 2차 구원(영육 구원) 입니다. 말씀의 길이, '호 로고스'가 그렇다 이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여도 심판 날에 큰 구원을 얻을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게 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 봐 보십시오.
24절에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 여러분들은 신원의 날에, 신원의 날에, 세상 끝날에 말씀의 역사로 부름을 입은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십자가 못 박아 죽인 그 족속이나 지식과 학식으로 교만했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요.
구원의 능력입니다. 구원을 얻을 자에게는 '소조 메노이스'라고 그랬는데, 구원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의 노력은) 0.001%도 되지 않아요. 근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사로, 하나님의 역사로 우리에게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죠.
25:39 – 27:29
하나님이 부르시는 대상(사람)은 지혜있고 잘난 자를 부르지 않았다.
지혜있고 잘난 자를 부르지 않았다. 왜냐? 자기 자랑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랑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만 높여드리고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선택한 잣대는 변변치 못한 자를 향해 있으며, 그를 하나님이 부르셨다. 이 말이야. 다시 말해서 지혜 없는 자를 불렀다. 이 말이야. 세상에서 미련하고 어리석은 이런 자를 하나님이 불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 5절에 보면은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을 주어 부유하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말씀은, '호 로고스'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게 보이고
미련하게 보이지만은 "주님의 말씀이 이거야. 내가 예수 믿은 보람이 있어."
(성도님의 집과 교회는) 참 멀어요. 아니 30~ 40분을 차를 타고 와도 "야, 멀다"고 하는데요.
3시간, 4시간(이나 걸려 우리 교회에 오시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어떤 성도가 해가 짧아서 예배 드리고 집에 가면 캄캄한 밤중이래요.
(여기까지) 왜 옵니까?
27:29 – 28:08
육신의 만족 때문입니까? 세상의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까?
우리는 내세의 십자가, 내세의 말씀으로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코 앞에 눈앞에. 그래서 은혜 시대의 성도들은 무엇을 구합니까?
"잘 살게 해주세요. 잘 살게 해주세요." 여러분,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보다) 잘 사는 사람 많아요.
기독교는 잘 살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건강 주세요.
병 낫게 해주세요." 기독교의 목적이 병 낫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 낫게 하는 건 마귀도 사탄도 하고 있습니다.
28:08 – 29:21
하나님께서 풍요롭게 부자가 되게 해 주시든지, 그냥 그날 그날의 생활을 만족하게 해 주시든지, 질병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든지, 질병과 싸우면서 살게 해 주시든지, 주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주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사도 바울이 이적 기사를 행하였고 능력이 많았던 사도바울이지만 그가 가진 세 가지 질병 때문에 어떻게 괴로운지, "하나님 이것 좀 제거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야, 내 은혜가 네가 족하다."라고 했을 때 사도 바울은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으로 아무리 어렵고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기독교의 최후의 축복은 그 나라 가는 거예요.
(제가) 가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 그랬잖아요. 죽어서 가는 길, 살아서 가는 길, 죽어서 가는 길은 십자가뿐이고,
살아서 가는 자(길)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는
"목사님 동인교회 오니까 설교 말씀이 되게 어렵네요.
<복 받으십시오. 복 받으십시오.
29:21 – 30:34
아멘.
축복 주십니다.
아멘.>
(다른 교회에 다닐 때는) 이렇게 했는데, 동인교회는 말씀의 길을 따라가라고 하니까 목사님, (말씀이) 되게 어렵네요."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미련하고 둔하고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귀를 열어주니까 (신원의 말씀이) 어렵게 안 들리고요.
유명하고 총명한 자, 선비, 변사들에게는 막아버리니까 (말씀이) 안 들리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이) 귀문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내 귀가! 아 그렇군요. 그렇군요. 절절이 주의 말씀이 날 분부하심 것 같도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영혼의 양식이 돼야 돼요.
여러분의 영혼의 양식이 되고 영혼의 생수가 돼야 돼요.
그래서 아모스 8장 11절 이하에 보면 세상 끝날 주님 오실 때가 되면 '양식이 없어서 주림도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그러면 양식이 없어 굶주림도 아니고 물이 없어 갈함도 아니면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라. 청년, 남녀가 북에서 동까지 온 천지를 돌아다녀도 (말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30:34 – 31:32
여러분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하늘의 양식이 쏟아지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물샘이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갈 때
양식을 먹고 가나안 갔는데 (하나님이) 이방 사람들에게 주지 않은 만나, 이방 사람들이 모르는 만나를 고향 가는 사람들에게만 만나를 줬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으면서도 고향 못 가고 죽은 자가 있다니까요.
광야에서 (그들을 하나님이) 쓰러뜨려버렸습니다. 근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딱 날짜가 나오니까 날짜를 계산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천만이었는데, 기독교인이 많이 줄었더라고요.
기독교인이 자꾸 줄어드는구나. 아무리 줄어들어도 신원의 말씀을 가지고 갈 사람은 주님은 챙깁니다.
챙겨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주는 것(이유)은 뭐냐?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31:32 – 32:53
말씀 가지고 분별할 줄 알고, 말씀 가지고 싸울 줄 알고, 말씀 가지고 인내할 줄 알고, 말씀 가지고 섬길 줄 알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없으면 모두 불평합니다.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있으면 관용과 이해와 용서가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동인교회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말씀, 십자가와 이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 시대 때는 말씀을 몰라도 돼요.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나의 죄를 씻기에는 예수의 십자가 피밖에 없네."
그래도 돼요. 그래도 돼요. 그러나 우리는 신원의 말씀이 아니고는 십자가의 말씀이 아니고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가 없습니다.
헤쳐나갈 수가 없어요. 제가 금요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제 아내가 방송을 듣고 아멘, 아멘 하더라고요.
마지막 에덴 동산 중앙은 대한민국이라고요. 이건 이스라엘 사람이 발표를 한 거예요.
세계의 에덴 동산 중심이 대한민국이라고. 그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여, 기뻐해 주십시오.
32:53 – 34:14
나는 유대인인데 온 세상을 다 돌아다니고 한국에 와서 6개월 동안 (이 곳을) 샅샅이 뒤졌는데 정말로 하나님이 예비한 나라는 여기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대요.
그 분의 발표입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철마다 산천초목이 바뀌는 곳은 대한민국밖에 없대요.
모든 나라의 물은 다 석회석이 섞여 있는데 대한민국 물은 산골짜기 어디든 아무렇게나 퍼먹어도 상관없대요.
그래서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대한민국 국화가 무궁화인데 성경에서 찾던 그 '사론의 꽃'이 무궁화라고 그 유대인이 발표하더라고요.
왜 무궁하냐? 무궁토록,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피고, 지고. 그런 꽃이 무궁화라고 합니다.
다른 꽃은 안 그렇대요. 꽃 자체가. 그리고 우리 민족이 예수를 안 믿어도 산신령을 믿는데 그 산실령은 하나님이래요.
34:14
그리고 이 대한민국 사람이 예수는 안 믿어도 삼신께 빈대요.
삼신. 무슨 귀신이 삼신이 있어요? 성부, 성자, 성령이 삼신이죠.
그래서 제 아내가 어서속히 대한민국의 에덴 동산,
에덴 동산을 다시 찾게 해달라고 기도의 제목을 잡고 기도할 때 저도 "아이 두.(I do.)" 그랬습니다.
그 에덴 동산이 회복될 때에 오늘 본문 말씀, 십자가의 '호 로고스'가 우리를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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