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32~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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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 01:15
주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예수님의 33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그분에게) 고난과 시련이 연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십자가의 처형 전 인) 이 주간만은 최고로 괴롭고 힘든 주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이 4복음서에 주님의 고난에 대한 것이 자세히 기록이 돼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만이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더라고요.
자,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별의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01:15 – 02:3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 헤어지는 이별을 앞에 놓고 만찬을 베푼 후에 기도의 동산, 겟세마네라고 하는 동산을 찾았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 요한복음 18장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습관적으로 이 동산을 찾으셨다라고 기록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시면 습관적으로 꼭 이 기도의 동산을 찾아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이 주간만은 마지막 기도의 밤이었으며 최고로 고통스럽고 괴로운 밤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죠? '겟세마네'라고 하는 것은 '기름 짜는 곳', '기름 짜는 틀' 이란 뜻입니다.
02:38 – 04:32
이곳은 예루살렘 동쪽 약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감람산 기슭에 있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보면 예수님이 기름짜는 이 동산, 여기에서 (예수님의) 피와 땀을 짰습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힘쓰고 애써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땅에 떨어지는 (그분의) 땀이 핏방울같이 되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땀이 - 모세 혈관이 터지고 - 핏방울같이 흘렀다라고 하는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이)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이런 기도를 하셨겠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힘들고 어렵고 정말로 두려운 이 십자가 지실 것을 앞에 놓고 기도의 동지들을 불러서 함께 기도할 것을 찾았습니다.
제가 이날까지 목회하면서 이 고난 주간 설교를 이렇게 나눠서 해보질 않았습니다.
(저는) 솔직히 지난주 예배드리고 집에 가서 어제까지 여러 개의 성경책을 펴놓고 세 가지(부분으)로 나눴습니다.
04:32 – 06:44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여덟 제자를 산 아래 두시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만 데리고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 제자를 데리고 기도하러 가신 것을 (제가 한 부분으로) 나눠 놨습니다.
그리고 이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십자가 처형을 앞에 놓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간절히 부탁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을 또 한 분야로 나눠놓고, 그리고 세 번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의 요청을 하시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세 제자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부분을 또 한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세 분야로 나눠서 일요일 오후부터 토요일까지 성경책을 다 펴놓고, 예수님이 이렇게 몸부림치고 정말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딱, 딱 나눠서 하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눈이 부었더라고요.
그래서 마누라가 저의 눈이 자꾸 부으니까 "너무 엎드려서 책을 보지 마시고 이제 쉬면서"- 차를 한 잔 가져오면서 - "책을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날까지 제가 목회하면서 공관복음의 책을 펴놓고 여기, 여기, 여기를 쳐다볼 때 "주님 이렇게 힘드습니까?
06:44 – 08:52
이렇게 힘이 들었습니까?" 정말로 눈물이, 정말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마가복음 본장 35절에 보면, 세 제자를 데리고 가서, (예수님께서) 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서 기도했다라고 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땅에 엎드려서 기도했다. 마태는 (예수님이) 세 제자만 데리고 가면서 고민하고 죽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두려움과 당황함과 불안함이 섞여 복잡한 상태였습니다.
마음이 요동치고 소스라치고 놀라운 심정이라고 그랬습니다.
마태는 어떻게 표현했느냐? (예수님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했다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다라고 기록돼 있는데, 마태는 (그 분이) 제자들과 조금 떨어져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쏟아졌다는 걸 같이 엮어보십시오.
(예수님이) 기도하시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이렇게 했을까요?
누가복음 22장 40절 이하에 보면은 누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돌 던질 만큼 떨어져서'
08:52 – 10:48
돌 던질 만큼. 그렇다면 한 30~40m 정도 (떨어진 정도가) 되겠죠. 그 (정도) 떨어진 곳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세 가지를 다 합쳐보세요. 제가 성경을 놔놓고 이 구절, 이 구절, 마가가 표현한 구절. 여러분,
이런 기도의 제목 하나 하나를 함께 모아놓고 보니까 얼마나 주님이 몸부림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누가의 표현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정말로 애절한 표현입니다.
여러분, 누가는 이스라엘 사람 아니에요. 누가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에요. 수리아 안디옥 출신입니다.
(그는) 헬라 사람이더라고요. 근데 (그가) 의사라고 표현을 했죠. 이렇게 이 동산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몸부림을 쳤더라고요.
우리가 찬송하고 기도할 때는 예사로 여겼는데, 제가 지난 주간에는 성경을 여러 개 펴놓고 마가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표현한 내용, 마태가 표현한 내용, 누가가 표현한 내용. 여러분들은 상상을 해 보십시오.
10:48 – 11:11
저는 오늘 우리 성도들과 함께, 우리 성도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주님과 함께 기도하자고 말하고 싶다 그랬습니다.
주님 곁에서 주를 도우며 기도해야 되겠다.
11:11 – 12:25
이렇게 처절한 주님이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 무섭고 저주스러운 십자가를 놓고 이렇게, 이렇게 기도했는가요?
이렇게 몸부림을 쳤는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이렇게 몸부림치며 기도할 때에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의 기도의 제목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의 제목을 내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 뜻대로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얼마나 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땅에 엎드려 아버지께 (기도할때 오늘 말씀) 본장, 마가복음 36절에 보면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 하나님께 부탁하는 기도입니다. -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12:25 – 12:52
(그가) 아버지께 기도할 때에 기도의 부탁 내용은 전부 '아버지'라고 그랬습니다.
전부 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이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말아주세요.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12:52 – 13:08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기도를 하고 혹시 이 제자들은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는지 가보니까 (그들은)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13:08 – 15:08
그 자는 모습을, 자는 모습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했다 그랬죠.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여기도 '내 원대로 마옵소서.' 이때 4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는 제자들을 바라보고 뭐라고 하신지 아십니까?
'저희 눈이 피곤함이라.' 눈꺼풀이 내려와 덮였구나 이 말입니다.
누가는 22장 40절에서 44절까지 보면 42절에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동산에서 그렇게 기도하고 몸부림치셨는데, 히브리서 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고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 받았다고 감사하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이 한 주간,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정말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 치셨군요.
몸부림 치셨구나."
15:08 – 15:35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옮겨달라고,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그는)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의 요청을 했습니다.
15:35 – 15:47
저는 십자가 못 박는 그림이나 영화도 못 봅니다.
어떻게 충격이 오는지.
15:47 – 17:01
얼마나 저주의 십자가, 얼마나 괴로운 고통을 앞에 놓고 (예수님은) 애걸복걸하셨습니다. 그저 히브리서 5장 7절에 '심한 통곡'이라고 했는데 마태, 마가, 누가 내용을 다 합쳐놓고 보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몸부림 치셨습니다. 주님. 저는 40년 이상 목회하면서 책을 다 펴 놓고 - 성경책이 집에 한 권만 있는 게 아니죠.
여러 권이 있습니다. - 쭉 놓고, 원어 성경도 한번 훑어보았습니다.
"주여 얼마나 괴로웠습니까? 얼마나 괴로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남에게 억울한 소리 듣고 조금 손해 봤다고 하면 (눈에)
쌍불을 켭니다. 우리 교인들도 (서로) 조금이라도 속상하면 말을 안 합니다.
17:01 – 17:10
겟세마네 동산, 이 동산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17:10 – 18:40
그래서 '땅에 엎드렸다'라고 하는 마가복음의 내용과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했다'는 마태복음의 내용과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누가복음의 내용을 합쳐놓으니까
참 주님 몸부림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보면, 역사에 그렇습니다.
얼마나 주님이 몸부림치고 기도했는지 손톱이 까지고 여기(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버리고 피가 났다고 그랬어요.
제가 이 성경책을 이렇게 쭉 3~4권을 펴놓고 여기 읽어보고, 여기 읽어보고, 여기 읽어보고 "이렇군요.
이 밤이, 이 밤이 이렇게 참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밤이었군요."(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아버지여!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고통의 잔을 옮겨 주시옵소서."
18:40 – 19:32
라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담당하시려고 이렇게 기도하셨구나.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의 기도하는 모습, 주님의 기도하는 모형. 둘째 아버지께 도와달라고 하는 기도의 제목,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냥 그냥 (기도)한 게 아니라 (주님은) 얼마나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이것을 내놓고 "아버지여, 아버지여,
이거 좀 지나가게 해주세요.
19:32 – 21:23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마도 히브리서 5장 7절에 (기록되었듯이) 심한 통곡이라면
이건은 그냥 소리 내서 몸부림치는 울음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예수님의 울음에 대해 세 가지를 말씀했죠.
울음 세 가지. 단어가 다 달라요.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의) 무덤 앞에 와서 주님이 그냥 눈물만 '주욱~' 주님이 울은 눈물이 그냥 눈물이에요.
그런데 예루살렘 멸망을 앞에 놓고 (주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거든요.
무서운 휘두르는 로마 칼날, 그 앞에 이 백성들이 멸망당할 걸 내다보고 예수님이 우셨다고 하는 그 울음은
이렇게 흐느끼면서 울은 눈물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울은 눈물은
방성대곡입니다. 방성대곡입니다. "아버지여, 이거 좀, 이거 좀 지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옵소서."
세 번째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요청을 했으나 제자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혀 도움이 안 됐습니다.
21:23 – 22:56
여러분들을 향하여 제가 이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제 아내를 위시해서 장로님, 권사님들, 집사님들에게 (제가)"기도 좀 해 주세요.
제가 심히 죽게 생겼어요.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요. 기도해 주세요."라고 그렇게 부탁한다면 우리 교회 권사님들은 (잠도) 안 자고 같이 울부짖으며 분명히 기도하리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교회 권사들은 통곡하며 같이 울 거라고요. 사랑하는 스승이 저렇게 통곡하고 우는데 그 분들이 맹숭맹숭 절대 있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 집사님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주님이) 기도해 달라고 데려갔던 이 제자들은 주님께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주님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주님과의 기도가 믹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보좌에 상달되어 응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본장 마가복음 14장 34절에 보면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깨어 있으라."라고 부탁했는데 (제자들은) '잠만 잤다'라고 돼 있습니다.
22:56 – 24:46
잠에 취하지 말고 합심하여 기도하면 마음이 흐트러지지 아니하고 경계심을 갖게 될 것을 놓고 예수님은 이렇게 부탁했는데, (그들이) 잠이 어떻게 이렇게 왔을까요?
잠이 이렇게 왔을까? 37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자는 제자들을 보고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기도에 실패하고 기도 못한 제자들은 전부 시험에 빠졌습니다.
얼마 있지 않다가 - 여기 계속 연달아 보면 -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해버렸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다 시험에 들었어요.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누누이 (말씀)했는데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이 방성대곡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비비고 하나님께 애걸복걸하는데도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는지 아십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너희 마음은 안 그럴 거야. 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야.
근데 육신이 너무 약해."
그리고 주님은 또 기도하러 갑니다.
또 기도하러 가요.
24:46 – 25:29
마태복음에 뭐라고 기록돼 있는가 하니, (예수님이) '심히 고민이 되어, 심히 고민이 되어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기도 좀 해라. 기도 좀 해라.
깨어 있으라. 깨어 있어 기도 좀 해라.'고 부탁하셨고 (제자들은 이것에 대해) 대답은 했겠죠. 대답은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들은) 전혀 다른 태도입니다.
여기서도 '너희 눈이 피곤하다.'고 그랬어요. '너희 눈이 피곤하다.'
25:29 – 27:17
여러분, 우리가 교회 와서 (예배드릴 때) 조는 졸음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지난번에 전혀 잠을 못 잤더니요.
설교 시간에 졸리더라고요. (우리는) 너무 피곤해서 졸릴 때가 있고요.
그다음에 약을 먹었을 때 졸릴 때가 있고요. 그다음에 사탄이 장난질하면 졸릴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고 '너희 눈이 피곤하구나. 너희 눈이 피곤하다.' 제자들에 대해 다 기록돼 있습니다.
'눈이 피곤하다.' 그런데 실제로 피곤한 분은 주님이에요.
성만찬을 하면서 떡을 나누고 잔을 나누면서 얼마나 주님이 예민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성만찬 식을 다 하고 "기도하러 가자."(라고 하셨고) 이제 (그분에게) 째깍, 째깍, 째깍 죽음이 앞에 옵니다.
사탄은 예수를 잡아죽이려고 아주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주님이 기도의 동산을 찾았는데 (제자들은) 전혀 전혀 (기도를) 한마디도 못한 것 같아요.
'잤다'라는 말은 '심히 잠이 들었다'는 소리거든요.
그래서 주님이 '저희 눈이 피곤하다. 저희 눈이 피곤하다.'(라고 하셨습니다.)
27:17 – 27:33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는 언제까지 이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신원의 날로 들어갈지 모르겠습니다.
27:33 – 29:29
제가 - (여러분들이) 저희 집에 가보면 (보실 수 있는데)- 지난 주간에는 (성경)책을 안 덮고 다 펼쳐 놓았습니다.
(제가) 앉았다가 또 (성경책을) 보고 "주님, 외로웠죠? 주님, 외로웠죠?"(라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 동산에서 울부짖고 몸부림 칠 때 제자들은 눈이 피곤하다고 하면서 잠들었을 때 주님은 (제자들을) 깨워놓고 또 가시고, 깨워놓고 또 가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전혀. (이것이) 어쩐 일입니까?
이게 어쩐 일입니까? 죽음을 앞에 놓고 이런 몸부림 속에, 주님이 저 돌 던질 만큼 떨어져서 저렇게 몸부림치고 있다면 (제자들은) 과연 잠이 올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상태였겠습니까?
(예수님이) 세 번째 와 보니까 역시 (제자들이) 자니까 (예수님께서) "이제 끝났다." 그랬습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이제 끝이다. 이제 끝이다. 일어나 가자.
이제 내려가자.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 30에 예수를 파는 가롯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에게서 지시를 받은 큰 무리들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여) 예수를 체포하러 왔습니다.
29:29 – 30:55
밤새도록 몸부림치고 지쳐 아주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발걸음을 하고 내려오는데 - 제자들은 자고 있다가 내려왔지만 - 예수님이 체포를 당합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앞에 놓고 "기도해라. 기도해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기도할 때가 올 때는 반드시 (여러분들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주간은, 이번 주간은 (우리의) 마음이라도 골고다의 언덕에 가서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 곁에 떠나지 않게 해 주세요. 우리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치는 주님을 바라보고 어떻게 우리가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절대적으로 이 큰 문제를 앞에 놓고 그렇게 몸부림치고 기도하시는 주님 곁에 제자들은 잠이 뭡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도와준 사람은 없더라고요. 없더라고요.
30:55 – 32:30
여러분, 왜 이렇게 됩니까? 이미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스가랴서에 보면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질 것이라.'고 예언이 돼 있고, (스가랴) 11장에 보면 은30에 팔릴 것이 예언이 돼 있고,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라고 말씀에) 이미 예정이 돼 있다.
이 길을, 이 길을. 그래서 아버지 뜻대로 해달라고 주님이 자꾸 기도한 것은 우리 주님이 (이 예언을) 아시거든요.
'이건 내가 져야 될 십자가예요. 내가 죽어야 될 십자가야.
그래야 인류가 구원받는 역사야. 구원받는 역사야.'(라고.)
여러분,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해서 죄인을 삼았다.
죄를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 없는 분이 인류의 죄를 지시고 스스로 죄인이 되어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다.' 그랬습니다.
32:30 – 33:10
여러분들은 이번 부활절을 기점으로 우리 성도들 사이에 찜찜한 것이 있으면 다 털어버리고 신원의 역사의 출발점이 되도록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서운한 거 있으면 털어버리고 괴로운 거 있으면 털어버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을 여러분들이 한번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33:10 – 34:16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런 처형을 당한다면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그런데 주님은 전혀 도움받을 곳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외면을 했다 그랬습니다. 아마 몇십 년 되었을 겁니다.
어떤 성도님이 (제게) 십자가 금배지를 주셨고 그 십자가 금배지를 제가 달고 다녔는데, 딱 이 성경을 생각하고 그것을 떼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의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가 무서운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면 그 십자가를 만들어서 기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느 집회에 가서 이 말씀을 했더니, - 그곳 장로님들 보니까 십자가를 큰 거 하고 있었는데, - (그분들이 그것을) 다 떼버리더라고요.
34:16 – 36:10
이 고난의 십자가가 영광이 되고 기념이 되는 게 아니에요. 내 친구가 차에 십자가를 떡 하고 달고 다녀서 "야, 이거 떼어. 이건 자랑이 아니야. 두려움이야. 죗값이야. 이게 무슨 부적같이. 저 불자들은 부적을 붙이고 다니지만은 기독교 십자가는 부적이 아니야."(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생각할 적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입니다. 오늘 설교가 좀 길어서 죄송합니다마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보통 3~4일 지나면 다 죽는답니다.
여러분들이 그 고통 속에 매달려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일주일까지 가더랍니다.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일주일까지. (그 사람은) 소리를 지르고 목마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에 독수리가 와서 쪼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AD300년 경에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야, 이것은 못할짓이다. 죄인이 처형을 받지만은 이것은 못할 짓이다.
이것은 못할 짓이다."(라고 했다고 해요.) 자식이나 부모나 남편이 처형 당하려 매달리면
36:10 – 37:54
(가족들은) 와서 통곡하고 울고 갔습니다. 여러분, (가족 중 한 명이) 거기에 매달려서 밤낮 아파서 괴로워서 소리 지르고 있으면 (가족들은) 와서 울고 가고 또 통곡하고 갔습니다.
근데 예수님 당시에 많은 죄인들이 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더라고요.
잡범들은 처형을 이렇게 안 해요. 반국가적 범죄자, 큰 살인을 한 범죄자 이런 분들만 이 처형을 하는데, 로마 당시에 로마 제국을 흉보고 반란을 일으키다가 처형을 당한 자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해요.
그 십자가 처형이 너무 고통스럽고, 거기에서 몸부림치며 죽는 걸 보고 콘스탄틴 황제가 십자가 처형은 폐지한다고 AD300년경에 발표를 하고 그 뒤로 십자가 처형법은 없어졌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성경의 예언서에 보면, 이사야 53장에 (예수님이) 죗값으로 십자가를 지실 것이 예언이 되어 있으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 분의) 죽음 이후에 세월이 좀 흐르고 십자가 처형은 폐지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37:54
여러분, 2천년 전으로 돌아가서 겟세마네 동산에 이렇게 몸부림 친 주님을, 이렇게 울부짖은 주님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이렇게 기도한 주님을 이번 주간이라도 곰곰이 곰곰이 생각하시면서 가족끼리라도 화목하시고 우리 성도들끼리라도 서로 교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 중에, 신앙 고백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 부활이죠. -
그다음에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거 - 이거는 변화성도(를 의미합니다.) - 이것을 내가 믿습니다하고 끝납니다.
신원의 역사를 앞에 놓고 우리는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몸부림치고 애걸복걸하던 주님을 이번 고난 주간에 수시로 생각나는 대로 기억하시거든 "주여! 내 죄 때문에 이 십자가 지셨습니까?
나는 오종종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내 기분대로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하시고)
주님 생각하시면서 신원의 종은 이번 부활절을 기해서 새로워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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