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보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본 모세
(신명기 32장 48-52절)
“당일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산에 올라 느보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 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 교회 성가대원들이 우리 교회 예배장소에서 한국어로 특송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리니까 어떻게 좋은지요. 저는 지난 주일날 태국에서 예배드릴 때 그들이 찬송을 힘차게 찬양을 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가 알아들을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그날 설교를 하면서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태국에 와도 닭 소리는 똑같고 중국에 가도 닭 소리는 똑같고, 한국에도 닭소리는 똑같아서 통역하는 닭이 한 마리도 없어도 되고 통역하는 개가 한 마리도 없어도 되는데 오늘은 사람 소리인데 왜 못 알아듣는가? 라고 말하며 창세기 11장에 바벨성을 쌓다가 언어 심판을 하는 바람에 오늘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면서 이제 우리에게 만유가 회복되는 날이 오면 모든 언어소통이 다 잘 될 줄로 압니다라고 말하면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벌써 한 주간 성가대 찬양을 안 들었다고 해서 마치 천사의 합창단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여러분 잘 들어주십시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이라는 대장정의 광야생활 을 마칠 즈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려주신 놀라운 사건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세가 일백 이십 세에 가나안 땅이 보이는 이 모압 평지 느보 산에 올라서 저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볼 때 요단 평야가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는 그때였습니다. 저 멀리 지중해 연안까지 훤히 볼 수 있는 그런 맑은 날씨였습니다. 그 땅은 사백 년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인데 그것이 이제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세가 이 사건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는 사건인 줄 압니다. 노예생활에 몸부림치며 울부짓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의 피로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바로를 굴복시키고 이끌고 나와서는 민족들에게 환영도 받고 대접도 받고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광야에 나와서도 역시 그들이 시비와 불평과 원망이 그 입에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십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많은 동료를 잃고 이제 형님까지 호르산에서 잃어버렸고, 지금은 혈혈단신으로 느보산에 올라와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인데 모세의 입에서 오늘 보문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참으로 가나안 문턱까지 와서 저 요단이 한눈에 잡힐 것 같고, 젖과 꿀이 흐르는 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는 모세인데 하나님의 선고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에게는 절망입니다. 모세라고 하는 이름은 ‘물에서 건져냈다’는 이름입니다. 그 바로 왕궁의 무서운 칼날과 무서운 재앙 앞에 그 종노릇하던 풍랑이 일어나는 그 바다와 같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하여 구출을 받고 큰 홍해라고 하는 대해에서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모세에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바로의 딸인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사는 것보다도 신명기 34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종으로 또 그를 민족의 선지자로 살아가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그런데 육십만 대군을 이끌고 광야를 통과하면서 참으로 존경받아야 할 자가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대접을 받아야 할 자가 대접받기는 커녕 원망과 불평과 배신까지 당합니다. 마치 이것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민족에게 멸시와 천대와 고통을 당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좌절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힘이 들 때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워줬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는 하나님께서 힘을 돋워주기는커녕 좌절을 할 수밖에 없게 합니다. 신명기 34장 7절 이하에 보면 모세 나이 백이십년이라는 연대가 나와 있습니다. 바로 왕궁에 사십 년이요 광야생활 사십 년이요, 즉 망명생활이지요? 다시 말해서 모세는 광야생활 팔십 년입니다. 왕궁서 훈련받는 기간이 사십 년이요 광야 생활이 40년이고, 또한 자기 동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면서 광야 생활을 한 사십 년을 합하여 일백이십 년이라는 기간이 흘렀는데 그가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고 눈이 흐리지 아니했다 했는데,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 그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육십만 대군을 이끌고 광야에 나왔으나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랬을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왜 이랬을까요? 민수기 20장 24절 이하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신 광야 가데스 므리바 물가에서 범죄를 했다고 그랬습니다.
자, 여러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5절에 보면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합니다. 모세가 거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다툼이 벌어지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는 영생과 직접 관계되어 범죄하는 것은 절대로 금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땅에서 저지르는 범죄는 순간이요, 또 실수나 부족함이나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영생과 관계되는 범죄의 문제에 걸려들면 이것은 용납지 아니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고, 시비를 하고, 막 모세를 아주 괴롭힙니다. 그 때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칩니다.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얼마나 많이 솟아났는지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시고 짐승들도 다 먹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치니까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물을 마시게 되고, 짐승 같이 이방이었던 우리도 그 물을 마시고 영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보면,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랬습니다. 반석을 두 번 친 것이 문제가 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죄인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한번만 치는 것도 참으로 대단한 일인데, 반석을 두번 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두 번 죽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모세가 걸려들은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민수기 20장 12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을 싸잡아서 같이 반석을 친 걸로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론은 억울하기도 하겠죠. 그러나 모세와 함께 아론을 싸잡아 반석을 친 걸로 하나님이 말합니다. 이것이 뭐냐면 동참 죄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칠 때에 아론은 두 번 치는 것을 붙들 여유도 없었습니다. 순간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아론을 호르산에 불러올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중에 짓는 여러 가지 범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에 관계되는 범죄만은 우리가 조심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지대까지 갔다 왔거든요. 우리 그 태국의 선교사가 몇해 전에 미국에서 집회를 하면서 저에게 배운 말씀을 전했더니 거기의 사람들이 정말로 ‘과연 이런 말씀이 있는가!’라면서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팔아서라도 이 말씀의 축복을 사야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이번에 가보니 태국에 교회를 잘 지어줬더라고요. 제가 이번에도 가서 거기 사람들에게 이 선교사가 내 제자니 좀 많이 도와주라는 말도 했습니다만 교회를 참 잘 지었어요. 그런데 그중에 한분이 박정희 대통령 때에 신임을 받아 돈을 떡 주무르듯이 하고 물 쓰듯이 쓰던 사람인데 하나님이 치니까 10년 동안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다고 그래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1년의 식물인간도 어려운데 10년 동안 식물인간 되면서, ‘하나님 나를 이번만 살려주면 가장 오지에 가장 미개한 나라에 가서 교회 짓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대단한 것 같더라고요.
언제나 남편은 부인이 신앙이 좋아야 되요. 모든 것 승리하는데 보면 부인의 신앙이 좋아야 되는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10년 만에 그 분이 살아나서 그 산촌 오지에 여러 교회를 지었는데 잘 지었어요. 제가 다 못 다니고 대충 다녀보고 말았습니다만 얼마나 그 어려운 곳에서 교회를 짓고 복음을 전해 예수를 믿게 하는지 제가 참으로 고맙다고 그랬어요. 이 복음을 받고, 이 말씀을 받고, 힘들게 교회를 지어주고, 또 그 사람이 혹시 자기 이름이 날까봐 그저 헌당식을 하기 전에 먼저 가버렸다고 해요. 제가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참 우리 교회가 참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왜 우리 교회가 고마우냐면 이 말씀을 듣고 함께 힘을 합쳐서 전할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말씀을 전하면 다 좋아하잖습니까? 그래서 앞으로 우리 교회 여러분들은 다 세계로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요 번역 기계가 잘 되어 있어가지고 한국말만 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기계 장치가 개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그 나라 언어를 잘 못 구사해도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장비들이 지금 개발되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제가 지난번에도 말했습니다만, 신문에 보니까, 세상에 이제는 비행기가 미국 뉴욕에서 딱 2시간 만에 한국 오더라구요. 그런 비행기가 지금 나왔어요.
그런데 그 비행기 항공료가 지금은 만만치 않게 생겼더라고요. 여러분이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더라구요. 저는 6시간동안 태국 치앙마이까지 가는데 몸부림이 나서 못 견디겠더라구요. 그런데 앞으로 미국도 2시간만 타면 갈 수 있다고 하니 얼마든지 말씀을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정말로 과학이 그토록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는 주님 오실 때가 꽉 되었기 때문인줄 압니다. 지금 여러분, 쉽게 미개 국가라고하면 안 되겠더라구요. 중국서 지금 4백 7십 몇 키로로 달리는 고속 열차가 나와 있더라구요. 4백 몇십키로라고 그러면요 비행기만큼 빠릅니다.
그런데 그게 중국서 지금 만들어서 운행직전에 있더라구요. 여러분, 다니엘서 12장 4절 이하에 보면,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고도로 발달한다”고 했잖습니까? 제가 치앙마이에서 선교사 보고 이랬습니다. 한국이 사명자 국가이기 때문에 지금 인천공항과 똑같은 비행장 하나를 또 짓는다고 하니까 깜짝 놀래요. 2017년에 완공한다고 하는데 지금 그 인천 공항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최우수 비행장으로 선정이 되었잖습니까? 가보시오. 얼마나 큰 플랜카드에 세계 일곱번째 1등으로 승진된 비행장이라고 써있습니다. 처음 그 비행장을 만들 때 ‘거기가 안개가 끼어서 안 된다. 거기 갯벌에 비행기 다 빠진다. 철새들 날아다니는 도래지기 때문에 비행기가 다 떨어진다’면서 데모꾼들이 얼마나 그 비행장 만드는 걸 반대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보십시오. 그 비행장 만들 때 반대하던 사람들이 4대강 일할 때 또 반대했고, 지금 저 제주도 강정마을 가서 또 반대를 합니다. 그건 절대로 반대하는 귀신이 따라 붙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말씀이 확 믿어지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하거나 설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했습니다. 말씀이 믿어지도록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세가 일백 이십년 동안 살았으나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골이 정정한 그 모세는 더 오래 장수할 수가 있었는데 모압 평지에 와서 사명을 거둬가니까 거기 호르산에 오를 때 생명이 끝납니다. 여러분, 민수기 10장 28절 이하에 보면 모세가 자기 조카를 데리고, 다시 말해서 아론의 아들을 데리고 다 함께 호르산에 오를 때 아론은 모르지만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딱 그 산에 가서 자기 동생 모세가 반석 칠 때 거기 옆에 있었다는 것 때문에 아론의 옷을 벗깁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억울하죠? 여러분, 주님 나라 가는 사람들은 시험받는 옆에 서지 마세요. 시험받는 자와 동조하지 마세요. 바로 이것은 내가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바로 그 산에서 아론의 옷을 벗깁니다. 그리고 아들 엘르아살에게 옷을 입히니까 그 산에서 하산하지 못하고 아론은 그 산에서 죽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그 말을 해줍니다. ‘너의 형 아론은 호르산에서 죽었다’며 그 죽은 이유를 말합니다. 반석은 모세가 쳤는데 왜 아론까지 곁들여 싸잡아 말을 합니까? 그 옆에 있었다는 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멸망 받을 때 그 옆의 이웃 동네까지 함께 멸망 받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어쨌든지 은혜 받은 자 옆에 함께 가시고, 기도하는 자 옆에 계셔야지 만약에 비방하거나 흉보거나 남을 헐뜯는 사람 옆에 있으면 반드시 그 영도 내게 옵니다. 제가 많이 바쁩니다. 어제는 태국서 와서는 바로 광주에 내려가서 결혼 주례를 하고 왔는데 신랑 신부에게 그런 말을 마지막에 그랬습니다. ‘너를 괴롭게 하는 자는 물에다가 기록하고 너에게 은혜를 입힌 자는 반석에다 기록해라’. 이 말은 받은 은혜는 잊지 말라는 소리거든요. 그저 악한 자가 괴롭히는 자가 있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런 일이 있거든 흐르는 물에 기록해 떠내려 보내버리고, 내가 잊어서는 안 되고 정말로 잊을 수 없는 그 분은 돌에다가 새겨서 항상 잊지 말라고 하면서 주례사를 마쳤습니다.
오늘 여러분, 정말로 모세가 왜 가나안 땅 못 들어갔는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신과 같이 썼던분 아닙니까?. 제가 이제 새벽예배 때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마치고 지금은 레위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방에 내려갔더니 ‘아이고, 목사님 외국 가 있는 동안 숨통이 막혔다’며 지방 목사님들이 그래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새겨질 때에 우리는 이 말씀이 영생하는 말씀인 줄 여러분이 믿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보세요. 애굽에서 종노릇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남자 아이를 막 죽이는 거기에서 해방시켜서 이끌어서 약속의 땅을 가면 여간 어려워도, 여간 힘들어도, 여간 괴로워도 참아야 되는데 거기서 뭐 하려고 무화과를 찾습니까? 그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다’고 하는 이건 미친 자가 하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던 그들은 그곳을 공동묘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약속의 땅을 안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끌고 여기까지 왔고, 벌써 구름이 덮어지고, 불기둥이 인도해주면 이미 배후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데 그 입에 들어가는 것 때문에 원망하면 안 되는데 지도자를 원망하다 다 죽었습니다.
나는 이번에 산족들에 대해 들어보니 기가 막힌 삶을 살아요. 거기는 윤리와 도덕이 없어요. 예를 들어서 그 부족 중에 산족 중에 한 여자가 경도가 있으면 동네 총각이 전부 다 잠자리 같이 해야 되요. 그리고 애기를 가졌다고 하면 맨 마지막에 잠잔 자가 남편이 되는 거예요. 자식은 누구 자식이든 관계없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복음이 들어갔어요. 웃을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또 그들은 절대로 못 살아도 원망이 없어요. 불교 세계라서 내가 원망하면 다음 세대에 환생할 때 못된 놈으로 태어날까봐 없다고 해요. 제일 좋은 팔자가 개 팔자가 그 팔자더라고요. 개가 늘어져 자도 그것이 자기들 조상이라는 거예요. 숙모도 될 수가 있고, 할아버지도 될 수가 있다고 하면서 혹시 내가 잘못하면 저 놈이 될 수가 있으니까 원망도 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남편이 살다가 가 버려도 ‘내 업이구나’하면서 남편을 원망하지 않아요. 여러분 같으면 칼부림 납니다. 다음 내세의 소망을 바라고 그렇게 참는다고 하면 그게 맞지 않거든요. 오늘 여러분들은 정말로 내세에 부활이 있음도 믿고, 이 말씀을 믿는 우리는 또한 변화성도가 되기 때문에 정말로 인내할 줄 알기를 바랍니다. 나는 불교문화가 그런 줄 몰랐어요. 환생한다는 소리만 들었는데 가보니까 여자가 다른 남편한테 가서 살아도 ‘내 업보구나’ 그러면서 살아요. 남편이 부인을 두고 다른 여자를 또 얻어 가버려도 또 그것 가지고 싸우다가 내가 다른 나쁜 놈으로 태어나면 어떻게 하냐면서 인내하는 거예요. 인내를 기가막히게 잘 해요. 우리는 인내하는 척 하다가 뒤집잖아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 모세가 그 땅에 못 들어간 것은 반석을 두 번 친 것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볼 땐 별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딱 같다 걸었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 아프게 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많고, 그렇게 모세도 그들과 싸우고 지지고 볶고 했는데, 딱 모세에게 걸은 것은 반석을 두 번 친 겁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지요? 고린도전서 10장 4절 보세요. 그 반석은 예수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이는 한 번 죄를 위해서 주님을 못 박는 거 외에 또 못 박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도 물을 내라고 그래서 반석을 두번 쳤거든요. 저는 이번에 우리 집사님들이 저에게 신경을 많이 써줬어요. 여러 가지 가져간 게 많습니다. 어떤 집사가 이렇게 큰 왕뚜껑 사발면을 사줘서 그것을 어떻게 먹나 했더니 하나님이 그것도 차에 싣고 가다가 뜨거운 물 부어서 풀밭에 앉아서 먹으니까 한국의 왕뚜껑 맛이 아니고 천국의 왕뚜껑 맛이 나더라고요. ‘아이고, 여기서 먹으라고 이걸 보냈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치가 어떻게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가야할 고국이 있고, 가야할 교회가 있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있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있다고 느껴지니까 감격해 지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내일이면 고국에 간다니까 오늘부터 좋아져요. 여러분, 거기가 천국같이 좋으면 뭐 그런 마음이 있겠습니까? 잠자리도 그렇지요. 저는 정말로 그 나라 음식을 못 먹겠어요. 그래서 어디 갈 때마다 그 침치 같은 것을 꾸리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오다가 산길이 너무 나빠 가지고 막 뒤집는 바람에 마지막 때는 바닥에 다 쏟아가지고 먹지도 못했습니다마는 얼마나 길이 험하고, 험난한지 모르는데 거기에 복음이 들어갔더라고요. 14대 복음이 거기 들어갔다니까요.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너무 고맙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차라리 안 보이면 되는데 저 지중해 연안까지 다 보이게 하고 안 보냅니다. 여러분, 분명히 신명기 3장 23절에서 27절 보세요. 모세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게 해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하는지 모릅니다. 기도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 주겠다고 하시면서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신명기에 보면 모세의 기도가 나옵니다. “저 요단강, 아름다운 그 요단 땅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그 땅 들어가고 싶으니 나로 그 땅을 들어가게 해달라”고요. 간절히 애원을 했으나 하나님은 그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 그래서 아론은 호렙산에 오르면서 자기가 그 산에 왜 올라가는지도 몰랐고, 내려올 때에 알아서는 못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기가 느보산에 오르면서 못 내려올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골고다 언덕으로 가서 죽을 것을 주님은 미리 아셨던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가나안 땅 가면서 광야에서 수많은 실수를 하고, 원망과 불평과 싸움이 날마다, 날마다 그들의 생활에 얼룩졌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원망하고, 그렇게 불평하고, 그렇게 싸우고, 모세를 돌을 들어 치려고 해도 그런 범죄보담도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더디 믿는 것 때문에 20세 이상은 두 사람외엔 싹 다 죽여 버렸다니까요. 민수기 13장 1절에 한 번 봐보십시오. 열두 정탐꾼을 뽑아서 가나안 들여보냈습니다. 가나안에 들여보냈는데 사십일 동안에 정탐을 다 하고 돌아와서 그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열지파입니다. 그런데 말은 은혜로운 말의 전파보다도 시험되는 말이 잘 번져 갑니다. 그 많은 사람이 울고불고 가나안 땅 들어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갈렙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 그 악한 자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하는데 여호수아 갈렙의 말을 믿지 않고 열 지파 사람들의 말을 듣습니다. 여러분, 열 지파의 그 대표를 뽑을 때요. 신앙이 있고, 믿음이 있고, 열심 있고, 건강하고 이런 사람을 뽑아 보냈는데, 그 사람들은 지파장이에요. 지파의 대표에요.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 빼놓고는요 다 잘 못 뽑았어요. 그 땅 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400년 만에 이루어지는 절호의 기회인데 약속의 말씀을 안 믿는다 이 말이에요. 말씀을 안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 땅에 들여보내지 않기 위해서 광야에서 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 땅에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절대 우리는 말씀을 믿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세계가 점점 어려워서 경제공항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6장 보면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그러나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그랬습니다. 여기 감람유는 뭡니까? 성전의 불을 밝히는 기름이에요. 즉 어두운 시대에 불을 밝히는 교회입니다. 그다음에 포도주는 뭡니까? 진리입니다. 즉 진리가 있는 교회는 경제의 파탄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십세 이상은 싹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 때 모세 아내도 죽습니다. 모세나 아론의 자식도 죽습니다. 그런데 누구만 남기느냐면 이십세 이하만 남기고 20세 이상은 여호수아 갈렙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 광야에 쓰러뜨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고린도전서 10장 보면 6절에 이런 일이 우리의 거울이라 그랬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구약에 일어났던 일들은 우리의 거울이에요. 여러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다고 그랬습니다.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민족들이 한꺼번에 물세례를 다 받았습니다. 여러분, 장정만 육십만 이라면 젊은이들까지 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린아이들까지요. 제가 논산훈련소에서요. 이천 명을 목사 몇 명이서 세례를 주니 정신이 없어요. 명찰을 딱 봐야 알아요. ‘누구누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하며 2천명 세례를 주는데 나중에 손이 퉁퉁 불어요. 이천 명을 한번 해보십시오. 그런데 홍해를 갈라놓고 이스라엘 백성을 한꺼번에 세례를 주었다고 고린도전서 10장에 그래놨다니깐요. 그러니 다 세례를 받았고 신령한 식물과 신령한 음료를 먹었다고 했는데 그 신령한 식물은 뭡니까? 만나입니다. 또 신령한 음료는 반석의 생수입니다. 이걸 먹여놓고 다 죽여버렸다니깐요. 오늘날 신약시대에 와서 신령한 생수가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입니다. 신령한 만나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 먹었다고 해서 그 나라 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죽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제가 태국에서도 이런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죽는다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생주기로 작정된 자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받기로 작정된 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씀을 먹고 면박이 벗어지고 휘장이 벗어지고 사망을 이긴다고 하는 이사야 25장을 알려주니깐 그 사람들에게 통역을 해도 ‘아멘’ 한다니깐요. 여러분, 말씀을 믿는 것은 내가 아니고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 아니고는 믿어지지 못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그냥 왔다 갔다만 하는 곳이 아니에요. 여러분,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계를 보면 세 가지의 바늘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쓸데없이 바쁜 사람을 말하는데 그것은 초침이에요. 그건 별 효용도 없는데 정신없이 바빠요. 그다음에 점잖은 척 하는 분침이 있어요. 그런데 정확한건 뭐에요? 시침이에요. 다 필요합니다 만은 세 가지 종류 중에 여러분은 어떤 부류입니까? 여기 지금 다 있어요. 앉았다가 후다닥 가는 사람은 무슨 성도입니까? 초침성도예요. 그다음에 적당히 때를 살피는 분침성도가 있는데 여러분은 시침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짧아도 사람들이 그걸 먼저 보게 되지 막 바삐 돌아가는 건 잘 안봅니다. 그걸 누가 봅니까? 돌아가는 것만 알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제가 설교가 길어서 죄송합니다만 내가 은혜 받았다고 해서 안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백성 된 거 가지고 마음 놓고 계시지 마십시오. 분명히 우리는 약속의 땅을 밞아야 되기 때문에 그 땅 가야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반석 두 번 친 것 때문에 가나안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씀을 안 믿기 때문에 가나안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꼭 고린도전서 10장 1절에서 7절까지를 읽어보면 이런 일이 우리의 교훈이 되고 거울이 된다고 했습니다. 거기 1절서 4절을 보면 출애굽 역사가 나옵니다. 홍해 건너는 것이 나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나오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가 나옵니다. 이걸 먹였으나 하나님은 다수를 기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안 믿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하는 다수보다 순종하는 소수를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소수의 무리지만은 이 말씀을 굳게 믿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영생의 주인공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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